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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연구팀/플레이모빌

플레이모빌 9325 마틴루터 playmobil 9325 Martin Lu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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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모빌 9325 마틴루터 playmobil 9325 Martin Luther

마린루터 재발매 제품입니다.

 

발매 당시에 구매를 못했다가 이번에 구매했습니다.

 

원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던 2017년을 기념해서 발매된 제품이였어요.

당시에 플레이모빌 6099 마린루터로 발매가 되었구요. 

 

그 제품이 이번에 품번만 바뀌어서 재발매 되었습니다.

 

구성품은 같습니다.

단지 박스포장만 바뀌었어요.

그리고 원래 제품번호인 6099이 아니라 9325로 바뀌었구요.

 

포장도 아주 쬐금 쬐금 포장 상단의 밴드만 바뀌었어요.

플레이모빌 사진도 그대로 똑같이 썼구요.

 

독일의 위인이라 그런지 애드온제품으로는 발매를 안하고 재포장발매를 한거 같아요.

 

그리고 플레이모빌 안에 있는 유인물이 2017년 500주년 기념이라고 씌어있어요.

 

제가 플레이모빌사의 직원은 아니지만 혼자나름대로 막 분석하고 있는 중입니다.

 

망토와 모자 그리고 자신의 저서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마틴루터의 안내문은 이전의 플레이모빌 6099 것을 가져다 쓴거 같네요.

조금 특이한건 마틴루터의 인물화가 하나 들어있는데요.

전혀 안 닮았어요.

플레이모빌에서는 꽃미남이 되어버렸네요.

독일인 친구들을 불러서 같이 단체샷을 찍어봅니다.

 

괴테와 실러 그리고 리바이스까지 함께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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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여담인데요.

조금 재미있는건 자국의 인물들만 발매를 하네요.

플레이모빌을 모으는 사람으로 이 부분이 아쉽습니다.

복잡한 역사관계 문제때문인지 다른 나라의 인물들을 특별판으로 발매하지는 않네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는데요.

플레이모빌사에서 커스텀이 가능하게 부품들만 별로 파는건 어떨까?

자국의 역사적 인물이나 자기 플레이모빌을 만들어서 캐릭터화하면요.

그것도 재밌을꺼 같은데요.

 

플레이모빌의 미스터리피규어처럼요.

미스터리 피규어들은 서로 다른 부분품들을 조합이 가능해요.

그렇게 해서 완전히 다른 캐릭터의 피규어를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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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마틴루터에 대해서 궁금하신 분이라면 아래글을 읽어보세요.

네이버에서 마틴 루터의 일대기를 퍼왔습니다.

플레이모빌을 수집 하면서 잘 모르던 마틴 루터 같은 역사적인 인물들을 알게 되어서 뿌듯해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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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마 가톨릭교회의 부패에 반기를 든 독일의 종교개혁자. 가톨릭교회의 교리와 폐쇄성에 의문을 제기하고 성경을 통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접촉과 하나님의 구원을 설파하였으며, 라틴어로 되어 있던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대중화에 기여함

외국어 표기 : Martin Luther(독일어)
출생 - 사망 : 1483년 ~ 1546년

마틴 루터 | 출처: 시사상식사전
루터는 1483년 독일의 작센안할트 주의 아이스레벤(Eisleben)에서 태어났다. 그가 그의 아버지의 염원대로 법률가가 되기 위하여 에르푸르트에서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집에 잠깐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벼락이 그의 바로 옆에 떨어졌다. 그는 이것을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이고, 부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아우구스티누스 은둔자 수도회 소속 검은 수도원에서 신부의 길을 시작한다. 그곳에서 성서를 중심으로 진지하게 공부하였고 그것은 신앙적인 고민을 해결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당시 로마 가톨릭교회는 부패하여 면죄부를 판매하는 등 폐단이 심했다. 루터는 여기에 적극적으로 반발하여 비텐베르크 성의 만인성자교회의 문 앞에 '95개의 논제'를 붙여놓았다. 이로써 그는 가톨릭교회와 전면적인 대립으로 치달았으며, 이 95개의 논제는 대중에게도 폭발적인 영향력을 발휘했다. 루터는 교회가 인간의 죄를 면하거나 구원할 수 없으며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로써 가능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섬김과 그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이 드러난다는 '십자가 신학'을 주장했다. 루터가 이렇듯 가톨릭교회를 비난하자 교황은 그를 이단 재판에 참석하라고 로마로 소환하였으나 프레데릭 선제후와 대학이 이에 반대하였고 대신 카예탄 추기경이 아우크스부르크에서 그를 심문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이 심문에서 루터는 모든 인간들은 오류를 범할 수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성서가 가장 높은 권위를 가진다고 말하며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따라서 추기경은 프레데릭 선제후에게 루터를 로마로 넘기거나 영지로부터 추방하라고 말하였지만 그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루터를 보호하였다.

1519년에는 라이프치히 논쟁이 일어났다. 엑크와의 논쟁에서 루터는 이전의 주장처럼, 인간은 잘못 판단할 수 있으며, 인간을 구원해 줄 대상은 같은 인간인 교황이 아니라 오로지 하나님이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인간에서 교회의 우두머리임을 역설하였다. 이 논쟁으로 루터와 로마 가톨릭교회는 더이상 공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교황은 교서 <Exurge Domine(주여! 일어나소서!)>에서 60일 안에 루터가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문할 것이라고 위협하였다. 또한 루터의 모든 저서를 불태우도록 명령하였다. 이에 루터는 학생들과 함께 교황의 교서와 로마 교회의 법전을 불태웠다. 결국 1521년 1월 3일 루터는 최종적으로 가톨릭교회에서 파면당하였다.

그러나 그 시대 로마교회로부터 파문당하는 것은 보호의 테두리 밖으로 쫓겨나는 것과 다름 없어 매우 위험하였다. 독일의 영주들은 보름스 국회의 청문회에서 루터가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얻게 해주었다. 카를 5세 황제는 신변 안전을 보장하며 보름스로 오도록 초청하였다. 위험한 일이었지만 루터는 보름스로 갔다. 루터는 그 청문회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에 카를 황제는 3주 이내로 보름스를 떠날 것을 요구하였으나 보름스에 있을 동안에는 신변을 보호해주었다. 루터가 보름스를 떠나자, 황제는 루터를 법에서 추방하였다는 칙령을 내렸다. 이제는 누가 그를 살해하거나 상해하여도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게 되었다.

위험해진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위장 신분으로 지내며 숨어있었다. 그는 그곳에서 라틴어로 되어 있어 대중들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이제 대중들은 성직자라는 중간자 없이 자유롭게 성서를 읽고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가 성서를 번역하면서 사용한 독일어는 현대 독일어의 표준이 되어 독일어를 통일하는 데에 공헌하였다.

종교개혁의 가장 중심에 있던 루터는 그러나 농민전쟁이나 에라스무스와 같은 인문주의자들과 차츰 구별을 지어갔다. 그는 검소하고 경건한 종교적 환경을 만들고 이끄는 개혁 활동을 계속해나가면서 성서 강의, 설교 등에 헌신하였다. 그러나 그는 유대인들에게 매우 적대적이었으며, 정치와 결합한 로마 가톨릭에 반기를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개신교 역시 지배세력과 결탁하여 농민전쟁에서 영주의 편을 들었다. 현실적으로 제후들과 결탁하는 것이 종교개혁의 진행에 더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는 마틴 루터의 한계점으로 지적받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마틴 루터 (시사상식사전, pmg 지식엔진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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