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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 연구팀/플레이모빌

플레이모빌 70688 프리드리히 실러 playmobil 70688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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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모빌 70688 프리드리히 실러 playmobil 70688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괴테에 이어서 프리드리히 실러까지 영입했습니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빌헬름텔의 작가입니다.

 

독일에서는 괴테와 더불어 국민작가로 불리며 유명한 작가더군요.

솔직히 이 부분은 잘 몰랐습니다.

 

이번에 플레이모빌을 영입하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일대기를 보니깐 화려한 삶을 살았던거 같아요.

 

항상 하는 생각이지만요.

플레이모빌사는 참 장사를 잘하는거 같아요.

매번 이런 기념판을 잘 만들어내니깐요.

 

한가지 부러운건 자국의 문화콘텐츠를 이렇게 상업적으로 활용하구요.

홍보를 한다는게 정말 대단히 상술이 좋은 회사인거 같습니다.

상업적이면서도 국위선양한다고 해야할까요?

 

우리나라의 K-POP과는 다른 꽤 강한 소프트파워 역량인거 같아요.

 

아동용 장난감이자만 플레이모빌이란 피규어가요.

참 유용한 소프트파워인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구매를 하고 열어봤는데요.

의자와 책상 그리고 사과가 있습니다.

이 사과는 뭐지?

빌헬름텔의 유명한 장면

텔이 아들의 머리 위에 사과를 놓고 화살을 쏘는 장면 대목을 쓰는 실러인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제 뇌피셜입니다.

플레이모빌사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진 모르겠습니다.

어떤 의도로 프리드리히 실러의 플레이모빌 피규어를 이렇게 구성했는지 추측할 뿐입니다.

 

박스와 함께 설정 샷을 만들어봤습니다.

저도 실러의 대표작만 알았지

실러의 일대기는 몰랐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읽어보니깐 괴테와 동시대에 활동했더군요.

더군다나 괴테와 함께 문학지도 발간했었더라구요.

 

그래서 괴테와 함께 인증샷을 남겨봅니다.

2020.03.26 - [취미 연구팀/플레이모빌] - 플레이모빌 9124 - 괴테 한정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플레이모빌 9124 - 괴테 한정판/ 요한 볼프강 폰 괴테 [Johann Wolfgang von Goethe]

이번에 소개해드릴 플레이모빌은 독일의 대문호 괴테입니다. <파우스트>와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유명한 작가이자 정치인입니다. 이 분에게 붙는 수식어가 굉장히 많더군요. 그만큼 다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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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인물들과 함께 해봅니다.

재밌는건 전부다 독일인입니다.

프리드리히 3세, 괴테, 마틴루터, 리바이스, 실러까지요.

 

2022.03.12 - [취미 연구팀/플레이모빌] - 플레이모빌 9325 마틴루터 playmobil 9325 Martin Luth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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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모빌 9325 마틴루터 playmobil 9325 Martin Luther 마린루터 재발매 제품입니다. 발매 당시에 구매를 못했다가 이번에 구매했습니다. 원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았던 2017년을 기념해서 발매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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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11 - [취미 연구팀/플레이모빌] - 플레이모빌 9295 리바이 스트라우스 - 리바이스 창립자

 

플레이모빌 9295 리바이 스트라우스 - 리바이스 창립자

플레이모빌의 뛰어난 상술인지 모르겠지만, 한정판을 참 많이 생산합니다. 누구 누구 탄생 기념 혹은 이벤트로요. 괴테탄생기념, 렘브란트의 마르텐 솔만트와 우프옌 코피트 초상화 네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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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에 접은 글은 실러의 일대기입니다.

두산백과에서 퍼왔는데요.

궁금하시면 한 번 읽어보세요.

 

프리드리히 실러 소개

더보기

프리드리히 실러
[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

요약 

독일의 시인·극작가. 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재학중에 쓰기 시작한 《군도(群盜)》를 극장에서 상연함으로써 큰 호응을 얻었고, 이는 독일적인 개성 해방의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독일의 국민시인으로서 괴테와 더불어 독일 고전주의문학의 2대 거성으로 추앙받는다.

 

출생-사망 : 1759.11.10 ~ 1805.5.9
본명 : 요한 크리스토프 프리드리히 폰 실러(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국적 : 독일
활동분야 : 문학
출생지 :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 마르바흐
주요저서 : 《빌헬름 텔 Wilhelm Tell》(1804)

 

1759년 11월 10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州)의 마르바흐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외과의사로 군의관이었으며, 어머니는 조용하고 정숙한 여성이었다. 14세 때 영주(領主)의 명령으로 칼사관학교에 입학하여 처음에는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후에 의학으로 바꾸었으며, 이때부터 시와 희곡을 쓰기 시작하였다. 엄격한 기숙사 생활과 구속받던 젊은 시절에 셰익스피어·레싱·호메로스·괴테 등의 작품을 읽으며 습작을 계속하였다.

1780년 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슈투트가르트 연대에서 군의관으로 복무하면서 사관학교 재학 때부터 쓰기 시작한 《군도(群盜) Die Räuber》를 1781년 완성하여 만하임 극장에서 상연함으로써 큰 호응을 얻었다. 이는 독일적인 개성 해방의 문학운동인 '슈투름 운트 드랑'의 대표작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작품으로 영주의 분노를 사게 되어 만하임을 탈출하였다.

그뒤 가난 속에서도 극작에 정진하여 1784년 역사극 《피에스코 Die Verschwörung des Fiesco zu Genua》와 시민비극 《간계와 사랑 Kabale und Liebe》을 완성하여 상연하였다. 1785년부터 2년간은 C.G.쾨르너의 우정으로 드레스덴에서 안주할 수 있었으며, 청년기의 격렬한 정열과 반항심이 점차 누그러지고 장년기의 냉정과 성숙을 얻게 되었다.

1787년 당시 문단의 중심지였던 바이마르로 이주하여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 크리스토프 빌란트 등과 친분을 맺고 역사와 그리스 문학 연구에 몰두하였으며, 운문사극(韻文史劇) 《돈 카를로스 Don Carlos》(1787)와 역사서인 《네덜란드 이반사(離反史) Geschichte des Abfalls der vereinigten Niederlande》(1788) 《30년 전쟁사 Geschichte des Dreissigjährigen Krieges》(1791∼1793)를 완성하였다.

1789년 예나대학교의 역사학 객원교수로 취임하였는데, 《30년 전쟁사》는 취임기념으로 강연한 내용을 모은 것이다. 그뒤 약혼녀 샤를로테와 결혼하였으나, 폐결핵으로 고생하였다. 덴마크 황태자인 폰 아우구스텐베르크의 원조를 받아 병이 나은 뒤에는 칸트철학을 연구하여 《우미(優美)와 존엄 Über Anmut und Würde》(1793), 《인간의 미적 교육에 관한 서한 Briefe über die ästhetische Erziehung des Menschen》(1795), 《소박한 문학과 감상적인 문학에 관해서 Über naive und sentimentale Dichtung》(1796), 《숭고(崇高)에 관해서 Über das Erhabene》(1802)와 같은 미학 논문을 집필하였다.

1794년 실러가 기획한 잡지 《호렌 Die Horen》에 괴테가 협력함으로써 두 사람은 실러가 사망할 때까지 문학·사상면에서 보기 드문 우정을 유지하였다. 1797년 편집한 《연간시집(年刊詩集) Musenalmanach》에 괴테와 공동으로 지은 단시(短詩) 《크세니엔 Xenien》 414편을 발표하였다. 독일 고전주의문학의 위대한 두 시인 사이에 오갔던 《괴테·실러 왕복 서한 Briefe zwischen Goethe und Schiller》은 풍요롭고 순진하며 진지한 두 사람의 영혼의 기록이며, 또한 문예와 인생 문제를 둘러싼 두 사람의 대결과 전개의 귀중한 기록이기도 하다.

실러는 괴테와의 교우를 계기로 다시 그의 본업인 극작에 전념하여 3부작인 《발렌슈타인 Wallenstein》(1799)을 완성하였다. 그뒤로도 투병하면서 창작을 계속하여, 작품마다 새로운 수법을 구사하며 내면적인 자유의 테마를 추구하였으며, 민족극 《빌헬름 텔 Wilhelm Tell》(1804)을 마지막 작품으로 남기고 1805년 바이마르에서 사망하였다.

시인으로서 《그리스의 신들 Die Götter Griechenlands》《이상과 인생 Das Ideal und das Leben》《예술가 Die Künstler》 등의 사상시(思想詩), 《잠수자 Der Taucher》《장갑 Der Hand schuh》 등의 담시(譚詩) 그리고 《말 Die Worte 》《음악 Die Musik》《친구와 적 Freund und Feind》 등의 이행시(二行詩)를 남겼으며, 베토벤 《제9교향곡》의 합창 부분 《환희에 붙여서 An die Freude》의 작시는 특히 유명하다. 또 수는 적으나 《범죄자 Del Verbrecher aus verlorener Ehre》(1786), 《유령을 본 사람 Der Geisterseher》(1789) 등의 소설도 있다.

일생에 9편의 완성된 희곡을 집필하였으나, 총괄적으로 구분하면 《돈 카를로스》를 경계로 하여, 그 이전의 작품에는 외적이며 정치적인 자유를 주제로 하여 격렬한 모습을 띠고 있으며, 그 이후의 작품에서는 내적 자유를 추구하여 숭고하고 유구(悠久)한 모습이 나타나 있다.

즉, 《군도》는 격렬한 사회비판과 자유에 대한 동경이 가득 차 있고, 《피에스코》에서는 폭정에 대한 분노와 공화주의에 대한 갈망이 드러나 있다. 또 《간계와 사랑》에서는 계급을 초월한 순애가 귀족사회의 음모로 말미암아 좌절하는 모습을 묘사하여 독일의 현실을 준엄하게 비판하였고, 《돈 카를로스》는 개인의 사랑을 초월하여 인류애로 눈을 뜨게 하는 과정을 그렸다.

《발렌슈타인》은 야심의 정열에 사로잡힌 주인공의 죄과와 멸망 속에서 내적인 자유를 추구하는 테마를, 《마리아 슈투아르트 Maria Stuart》(1800)는 현세의 집착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내면적 투쟁을 겪어 순화되어 가는 과정을, 잔 다르크의 전설을 극화한 《오를레앙의 처녀 Die Jungfrau von Orleans》(1801)는 신탁(神託)과 현세의 사랑의 상극(相克) 속에서 사랑하고 정신적으로 파괴되는 처녀의 영적 고뇌를 묘사하였다.

《메시나의 신부 Die Braut von Messina》(1803)는 그리스 비극에서 합창의 수법과 운명의 관념을 도입하여, 한 처녀를 동시에 사랑하는 형제의 비운의 전말(顚末)을 묘사하였으며, 《빌헬름 텔》에서는 스위스를 무대로 소박한 농민과 사냥꾼인 텔을 중심으로 악덕무도한 지방관(地方官)에 대항하여 조국을 해방시켜가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독일 고전주의문학에서 괴테와 더불어 2대 거성으로 꼽히며, 괴테와는 대조적인 자질을 가진 국민시인으로 추앙받는다.

프리드리히 실러 연보
출생 1759.11.10~ 사망 1805.5.9
1759 11월 10일 독일 네카르 출생.
1767 루트비히스부르크 라틴어 학교에 입학.
1772 희곡을 쓰기 시작함.
1773 카를 오이겐 대공이 세운 사관학교에 입학.
1781 사관 학교 재학 때부터 쓰기 시작한 《군도 Die Räuber》 완성, 만하임 극장에서 상연해 큰 호응을 얻었으나 영주의 분노를 사게 되어 만하임 탈출.
1784 역사극 《피에스코 Die Verschwörung des Fiesco zu Genua》와 시민비극 《간계와 사랑 Kabale und Liebe》 완성.
1787 운문사극 《돈 카를로스 Don Carlos》 완성.
1789 예나대학교 역사학 객원교수로 취임.
1793 미학 논문 《우미와 존엄 Über Anmut und Würde》 집필.
1794 괴테와 함께 문학잡지 《호렌 Die Horen》지 출간.
1799 《발렌슈타인 Wallenstein》 3부작 완성.
1804 민족극 《빌헬름 텔 Wilhelm Tell》 완성.
1805 5월 9일 급성 폐렴으로 바이마르에서 사망.
[네이버 지식백과] 프리드리히 실러 [Johann Christoph Friedrich von Schiller]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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