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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연구팀/풍경

대구 가볼만한 곳 불로동고분군 후지필름 미러리스 X-T30 사진 후기 다섯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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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가볼만한 곳 불로동고분군 후지필름 미러리스 X-T30 사진 후기 다섯번째

요새 코로나19 사태로 다른 지역에는 안가고 집에만 있다보니 답답해서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불로동고분군이라고 경주의 왕릉만큼은 아니지만 꽤나 큰 무덤군입니다.

 

상당히 웅장하고 여름이나 봄에 사진찍으러가면 경주 왕릉같은 느낌이에요.

 

경주 왕릉을 배경으로 사진찍는게 한동안 유행했잖아요?

그렇게 찍을 수 있어요.

 

밑에 사진들을 보면 알겠지만 사람과 비교했을때 상당히 커요.

가을이나 풀이 자라나는 봄에는 출사가기 좋은거 같아요.

 

특히나 대구 시내에 인접해 있어서 가기도 쉽구요.

 

불로동 고분 [ 大邱 不老洞 古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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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분지의 북쪽을 가로막고 있는 팔공산괴에서 남서로 금호강을 향해 뻗는 능선의 말단부에 분포하는 고분군으로, 대구에서 금호강을 건너 대구분지의 동북단에 위치한다. 고분들은 ‘H’자 모양으로 형성된 능선들 가운데 북서의 능선을 제외한 3개의 가지능선들 상부와 사면에 조밀하게 분포하는데 1980년 정비복원시 확인된 것은 모두 211기이다. 이 때 복원된 고분들의 크기는 직경 17m 이상의 대형분이 22기, 12∼16m의 중형분이 50기, 11m 이하의 소형분이 139기로 대구지역에 남아 있는 대고분군의 하나이다. 고분들 가운데 2기의 대형봉토분(해안 1·2호)이 일제강점기인 1938년에 齋藤忠에 의해 발굴조사 되었고, 1963년에는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하여 2기의 분묘(불로동 갑·을호)가 추가로 발굴되었다.

해안 1호는 불로동 고분군 가운데 가장 거대한 봉토를 가지고 있던 것으로 봉토의 크기는 동서장축 62m, 남북단축 28m, 높이 약 7m였다. 실측도로 보아 2개의 봉토가 합쳐진 두 사람무덤(兩葬墳)으로 하나의 봉토를 축조한 다음 또 하나의 봉토를 이은 표형분으로 판단된다. 봉토의 동측(동분) 중앙부에서는 1기의 구덩식돌덧널(竪穴式石槨)이 조사되었다. 돌덧널은 무덤구덩이(墓壙)를 파고 길이, 너비, 높이가 8.05×1.2×2.2m의 돌덧널을 축조한 다음, 중간에 40㎝ 정도의 격벽(隔壁)을 마련하여 으뜸덧널(主槨)과 딸린덧널(副槨)을 구분한 주부곽식(主副槨式)이다. 실측도로 계산하면 으뜸덧널의 길이는 4m, 딸린덧널의 길이는 3.6m 정도이다. 돌덧널은 네 벽을 산돌로 상부가 축약되게 눕혀 쌓아 축조하였고 위에는 5매의 대형판석으로 뚜껑을 덮었다. 으뜸덧널의 껴묻거리는 모두 도굴되었고, 부곽에서 큰항아리,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와 금동제말띠꾸미개 등이 출토되었다.

해안 2호는 봉토가 저경 21m, 높이 4m 정도의 원형으로 보고서의 사진에 의하면 막돌을 많이 사용한 것이 확인되는데, 이것으로 보아 돌무지덧널무덤(積石木槨墓)일 가능성도 있다. 봉토의 내부에서는 1기의 주부곽을 갖춘 구덩식돌덧널이 조사되었다. 돌덧널은 1호와 동일하여 규모 5.5×1.2×1.9m의 덧널을 축조하고 서벽에서 1.8m에 격벽을 설치한 다음 동측을 으뜸덧널로, 서측을 딸린덧널로 사용한 것이다. 으뜸덧널에서 꺾쇠가 37점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으뜸덧널의 내부에는 나무덧널(木槨)을 설치한 것으로 판단된다. 전체 돌덧널의 위에는 6매의 대형 판석으로 뚜껑을 하였고, 돌덧널의 바닥에는 모래를 깔았다. 으뜸덧널의 서벽 가까이에서 토기 50여 점과 쇠도끼(鐵斧) 등이 출토되었고, 중앙부에서 쇠손칼(鐵刀子) 1점, 꺾쇠 37점이 출토되었다. 꺾쇠가 중앙부에 밀집해 있고 토기가 서벽에서 출토된 점으로 미루어 서벽측의 토기가 나무덧널의 내부에 포함되었을 가능성은 적은 것 같다. 딸린덧널에서는 토기 61점이 출토되었다.

불로동 갑호와 을호는 1963년 경북대학교박물관에 의해서 발굴조사 되었다. 갑호는 봉토가 완전히 유실되고 없었는데, 여기에서 1기의 구덩식돌덧널이 조사되었다. 돌덧널은 장축을 동-서로 한 4.5×0.7×1.0m의 크기였다. 돌덧널은 깬돌(割石)을 이용해 바닥에서부터 눕혀 쌓아 네 벽을 축조하고, 위에는 부정형의 괴석을 덮었다. 바닥에는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았다. 돌덧널의 양측에 유물을 부장하였으나 동측의 유물은 모두 도굴되었고 서측에서 토기 36점, 쇠화살촉 7점, 어골(魚骨) 다수가 출토되었다. 을호는 봉토가 경작과 민묘의 조성으로 유실되고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내부에서 1기의 구덩식돌덧널이 조사되었다. 돌덧널은 장축을 북동-남서 방향로 한 4.8×0.95×0.85m의 크기였다. 돌덧널은 깬돌을 이용하여 바닥에서부터 눕혀 쌓아 네 벽을 축조한 것으로, 위에는 부정형의 판석으로 덮었다. 바닥에는 별다른 시설을 하지 않고 생토면을 그대로 이용했다. 유물로는 돌덧널의 북동쪽에서 토기 30점, 은장식말띠드리개(銀裝杏葉) 3점, 재갈 1점 등이 출토되었다.

출토된 유물들로 보아 이 고분들은 5∼6세기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무덤의 크기나 출토유물들의 질로 보아 대구 동북편에 자리잡았던 읍락집단의 지배자 고분으로 추정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불로동 고분 [大邱 不老洞 古墳] (고고학사전, 2001.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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